심신증의 여러가지 접근 방법
진료실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병은 과연 몸에서만 시작되는 것일까?
속이 쓰린 사람이 있습니다.
검사를 받고 약을 먹으면 조금 좋아집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큰일이 생기면 다시 아픕니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은 몹시 피곤한데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가슴부터 두근거리고, 어떤 사람은 배가 아프며, 또 다른 사람은 목과 어깨가 단단하게 굳어 버립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이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는 오랫동안 환자를 보면서 이 차이가 늘 궁금했습니다.
단순히 스트레스가 많고 적은 차이일까?
아니면 사람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심신증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마음과 몸을 따로 떼어놓을 수 있을까
심신증을 쉽게 설명하면 심리적·사회적 요인이 신체 증상의 발생과 경과에 깊게 관여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심신증을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자칫
“마음이 약해서 아픈 것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훨씬 복잡합니다.
긴장하면 심장이 빨라집니다.
두려움을 느끼면 식은땀이 납니다.
큰 걱정거리가 생기면 입맛이 떨어집니다.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갑자기 배가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면역계, 근육과 내장 기능의 변화를 통해 실제 몸의 상태를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람이 한 명 등장합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입니다.
다마지오 — 몸은 마음의 배경이 아니라 마음의 일부다
서양철학에는 오랫동안 마음과 몸을 서로 다른 것으로 바라보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다마지오는 이 생각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의 감정과 사고는 뇌 속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뇌는 끊임없이 심장, 혈관, 내장, 근육, 호르몬 등 몸 전체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다마지오는 감정과 느낌을 설명하면서 특히 몸의 상태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의 연구에서 느낌(feeling)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몸의 상태를 마음이 경험하는 과정과 깊이 관계합니다. 최근의 그의 이론에서도 내부 장기의 상태를 감지하는 ‘내수용감각(interoception)’과 항상성 조절은 느낌과 의식의 중요한 토대로 다뤄집니다.
쉽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낀다고 할 때,
‘불안한 생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얕아지고,
배가 긴장하고,
근육이 굳고,
그렇게 변화된 몸의 상태를 다시 뇌가 읽습니다.
그리고 그 몸의 상태는 다시 우리의 감정과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고, 몸이 다시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증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몸을 공격한다’는 일방향의 그림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구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까?
여기까지는 현대 신경과학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똑같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왜 한 사람은 위장이 아프고, 한 사람은 잠을 못 자며, 한 사람은 머리가 아플까요?
더 흥미로운 것은 감정의 반응 방식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밖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안에서 계속 생각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로운 상황을 만나면 앞으로 벌어질 가능성부터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과 구체적인 사실을 먼저 살피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융(C. G. Jung)의 심리유형론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융 — 사람에게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향이 있다
융은 사람의 성격을 단순히 활발하다, 조용하다 정도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기본적인 방향을 외향과 내향으로 설명하고, 다시 정신기능을 사고·감정·감각·직관으로 구분했습니다. 융의 원래 설명에서 외향과 내향은 단순히 사교적이냐 조용하냐의 차이가 아니라, 판단과 관심의 중심이 객관적 대상에 더 기울어 있는지, 주관적 조건에 더 기울어 있는지와 관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유형이 더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데 익숙한 통로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심신증을 바라볼 때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마다 정신적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면,
스트레스의 내용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만큼이나 그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마는 몸보다 먼저 ‘사람의 차이’를 보았다
그런데 19세기 조선에서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동무 이제마입니다.
사상의학을 음식이나 체형에 따라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을 구별하는 의학 정도로 이해하면 이제마가 이야기하려 했던 인간관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이제마에게 사람의 차이는 신체적인 차이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정(性情)과 장부 기능, 행동, 인간관계, 질병을 하나의 구조 속에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애·노·희·락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슬픔·화·기쁨·즐거움이라는 네 가지 감정만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도 성정의 애노희락은 감정뿐 아니라 인지·판단·반응·행동의 성향까지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상의학을 깊이 들어가면 체질은 단순히
“무엇을 먹어야 하는 사람인가?”
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하고, 무엇에 민감하며, 어떤 방향으로 치우치기 쉬운가?”
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마는 이런 성정의 지나친 편향이 신체의 균형과 질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심신증과 사상의학은 흥미롭게 만납니다.
김도순이 체질을 ‘척 보면 안 된다’고 한 이유
체질을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은 아주 쉽게 겉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어깨가 넓으니 무슨 체질이다.”
“몸이 크니 무슨 체질이다.”
“화를 잘 내니 무슨 체질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판단은 사상의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의사 김도순은 《체질, 척 보면 안다?》에서 바로 이런 대중적인 체질 판별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외모 몇 가지나 음식 궁합만으로 체질을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판단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그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단순한 음식체질론보다는 인간 심성의 치우침과 그것을 조절하는 문제와 연결해서 바라보았습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질을 제대로 보려면
사람이 화를 내느냐 안 내느냐보다
왜 화를 내는지를 봐야 하고,
말이 많으냐 적으냐보다
무엇 때문에 말을 하는지를 봐야 하며,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을 결정하게 만든 마음의 방향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체질론이 단순한 사람 맞히기에서 벗어나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마지오, 융, 이제마는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일까?
여기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마지오의 신경과학과 융의 분석심리학,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언어와 방법으로 만들어진 이론입니다.
따라서
“다마지오의 이 이론이 곧 이제마의 이것이다.”
“융의 네 기능이 곧 사상체질 네 가지다.”
라고 단정한다면 오히려 각각의 이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동일한 이론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이 사람들이 어느 지점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몸과 분리되어 존재하는가?
사람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는가?
그 차이는 감정과 행동뿐 아니라 신체의 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입니다.
심신증을 바라보는 새로운 출발점
그래서 저는 심신증을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픈 병’
이라고 정의하고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신증은 인간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창문일 수 있습니다.
몸이 왜 아픈지를 알려면 몸만 보아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화가 나는지,
어떤 상황에서 긴장하는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지 안으로 쌓아두는지,
세상의 변화와 가능성에 민감한지, 현실의 구체적인 조건에 더 민감한지.
이런 것까지 함께 보아야 한 사람의 질병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왜 어떤 사람은 위장이 먼저 아프고, 어떤 사람은 가슴이 뛰며, 어떤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할까?
혹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심리적 방향성과 신체적 취약성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질문이 앞으로 제가 이야기해보고 싶은 심신증과 체질의 출발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먼저 다마지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감정은 머리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다마지오는 오히려 몸이 감정과 판단을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오래된 한의학의 질문과 만나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것일까요?
아니면 몸이 마음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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