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병
우리는 보통 감정이 ‘머리에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슬픈 일을 생각하면 슬퍼지고, 화나는 일을 떠올리면 화가 납니다. 그러니 뇌에서 먼저 감정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심장이 뛰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보면 꼭 그런 순서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50대 중반의 한 남성이 몇 달째 계속되는 속쓰림과 명치 답답함을 호소한다고 해봅시다. 처음에는 위장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조심하고 위장약도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합니다.
이상한 것은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말에는 비교적 편합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부터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려고 하면 식욕이 없어지고 화장실을 몇 번씩 갑니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면 명치가 꽉 막힌 것 같고 심장이 빨리 뜁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특별히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원래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몇 달 전 회사에서 부서가 바뀌면서 자신과 맞지 않는 상사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지적받을까 신경이 쓰였고, 퇴근한 뒤에도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휴가를 가면 증상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출근을 앞두면 다시 속이 불편해집니다.
물론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심신증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위장이나 심장 등 신체적인 질환이 있는지 먼저 적절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검사에서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고 증상이 심리적 긴장과 뚜렷하게 함께 움직인다면, 이제는 위장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상사를 생각해서 불안해졌고, 그래서 위장이 아픈 것일까요?
아니면 상사를 만날 상황이 다가오자 자신도 미처 의식하기 전에 심장이 빨라지고 위장이 긴장했으며, 그렇게 달라진 몸의 상태를 다시 느끼면서 불안이 더욱 커진 것일까요?
마음이 먼저일까요, 몸이 먼저일까요?
다마지오가 주목한 것은 ‘몸’이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감정과 의식을 연구하면서 몸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의 생각을 단순히 “감정은 몸에서 생긴다”라고 정리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뇌와 몸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 하나의 과정 속에서 감정과 느낌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뇌는 바깥세상의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는지, 호흡은 어떤지, 위장과 장의 상태는 어떤지, 근육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등 몸 안에서 올라오는 정보도 계속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몸 내부의 상태를 감지하는 것을 오늘날에는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앞의 환자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출근해야 합니다.
상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심장이 조금 빨라집니다. 호흡이 얕아집니다. 명치가 긴장합니다. 장운동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렇게 변한 자신의 몸을 다시 느낍니다.
“오늘도 속이 이상하네.”
그 순간 불안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불안이 몸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몸을 다시 느끼면서 불안이 커지는 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증을 단순히 ‘마음 때문에 몸이 아픈 병’이라고 설명하면 중요한 절반을 놓칠 수 있습니다.
몸도 다시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항상성, 그리고 몸이 보내는 신호
여기에서 다마지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항상성(homeostasis)입니다.
우리 몸은 체온, 혈당, 수분, 산소와 같은 생명 조건을 적절한 범위 안에서 유지하려고 합니다. 더우면 땀을 흘리고,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고, 에너지가 부족하면 배고픔을 느낍니다.
다마지오는 이런 생명 유지의 조절 과정과 느낌을 매우 중요하게 연결합니다.
배고픔, 갈증, 통증, 편안함과 불편함 같은 느낌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닙니다.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몇 달 동안 매일같이 긴장하는 사람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출근할 때마다 심장이 빨라지고, 위장이 긴장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일 일을 생각합니다. 다음 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상사라는 ‘바깥의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된 몸 자체가 다시 마음에 영향을 주는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신증을 이해하려면 병이 있는 장기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무엇에 긴장하는가?
그 긴장은 몸의 어디에서 먼저 나타나는가?
그리고 그 몸의 변화가 다시 마음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 세 가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같은 상사 밑에서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모든 사람이 위장병을 앓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소화기가 먼저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잠을 못 자며, 어떤 사람은 두통이나 가슴 두근거림으로 나타납니다.
왜 사람마다 마음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고, 몸이 반응하는 방식도 다른 것일까요?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제마가 말한 성정(性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정은 단순히 ‘성격’이나 ‘감정’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제마가 말한 애·노·희·락은 정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슬픔·분노·기쁨·즐거움이라는 네 가지 감정을 뜻했을까요?
이 질문을 풀어야 심신증과 체질의 관계를 한 단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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