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기억을 할까?
반복되는 스트레스가 심신증으로 굳어지는 과정
“그 일은 이미 끝났는데 몸은 아직도 그때처럼 반응합니다.”
진료실에서 가끔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직장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도 어느 정도 정리됐습니다.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잠은 여전히 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사람은 중요한 약속만 생기면 배가 아픕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 장소에 가면 이유 없이 목과 어깨가 굳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몸도 기억을 할까요?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근육이나 위장, 심장이 과거의 사건을 사람처럼 기억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억은 뇌와 신경계의 복잡한 학습 과정과 관계합니다. 또한 반복된 경험은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 행동, 주의, 감각처리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몸의 기억’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신경계의 학습이 이후의 신체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적절합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파블로프의 개를 생각해보자
조건화를 설명할 때 가장 유명한 예가 파블로프의 실험입니다.
원래 음식은 침을 분비하게 합니다. 종소리는 침 분비와 특별한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올 때마다 반복해서 특정 신호가 함께 제시되면 나중에는 음식이 없어도 그 신호만으로 침 분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경계가 두 사건 사이의 관계를 학습한 것입니다. 인간의 몸에서도 이와 비슷한 학습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심신증은 파블로프의 실험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좋은 출발점입니다.
처음에는 회사 때문에 잠을 못 잤다
한 사람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업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밤마다 걱정합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해결책을 생각합니다. 심장이 뛰고 어깨가 긴장합니다. 새벽 두세 시가 되어야 잠이 듭니다. 이런 생활이 두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합니다. 사업 문제 → 걱정 → 신체 각성 → 불면이었습니다.
그러다 사업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잘 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밤 11시가 되면 다시 정신이 맑아집니다. 침실에 들어가면 긴장합니다. 침대에 눕는 순간 생각합니다. “오늘도 못 자면 어떡하지?”
이제 사업 문제가 없어도 몸이 반응합니다.
침대가 ‘각성의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두 달 동안 어떤 일이 반복되었을까요?
침대에 누웠습니다. 걱정했습니다. 심장이 빨라졌습니다.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 날 피곤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수십 번 반복됩니다.
그러면 원래 휴식과 수면을 위한 장소였던 침대가 걱정하고 깨어 있는 장소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침대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뇌가 그 상황과 각성 사이의 관계를 학습한 것입니다.
이것은 만성 불면에서 행동치료가 중요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장도 비슷한 학습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복통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심한 복통과 설사를 경험했습니다. 큰 곤란을 겪었습니다. 몇 달 뒤 다시 발표 일정이 잡혔습니다. 아직 발표일까지 일주일이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배가 불편합니다.
“또 그때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시작됩니다.
발표 전날에는 화장실을 여러 번 확인합니다. 아침에는 식사하기도 두렵습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 장의 변화 → 복통이었다면, 나중에는 발표에 대한 예상 → 불안 → 자율신경 및 장의 변화 → 복통 → 불안 증가라는 새로운 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 장의 변화와 그것을 느끼고 해석하는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측’이 중요해진다
지난 글에서 뇌가 몸의 신호를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뇌는 과거 경험을 이용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예상합니다.
과거에 발표할 때마다 배가 아팠다면 “발표 = 배가 아플 수 있는 상황”이라는 예상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예상은 다시 주의를 바꿉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작은 장운동을 더 빨리 발견합니다. 작은 불편감에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해집니다. 몸의 각성이 다시 증가합니다.
즉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실제 몸의 변화와 예측이 만나는 곳
그렇다고 모든 증상이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신체 신호가 존재합니다. 장운동이 변할 수 있고 심박수가 증가할 수 있으며 근육이 긴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뇌는 그 신호를 아무런 배경 없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거 경험, 현재 상황, 기대, 주의, 감정 상태등과 함께 해석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증상은 단순히 몸에서 올라온 신호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몸의 신호와 뇌의 예측이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이 형성됩니다.
같은 심장박동이 왜 다른 느낌이 될까?
두 사람의 심장이 모두 빨리 뛰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운동 중입니다. “운동했으니까 당연하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은 새벽에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뜁니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해집니다.
같은 ‘심장이 빨리 뛴다’는 신체 현상이 한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운동감각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위험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의 신호만큼이나 그 신호에 붙는 의미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신경가소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에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우리의 신경계는 완성된 전선처럼 평생 똑같이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과 학습에 따라 신경회로의 기능과 연결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신경가소성입니다. 악기를 연습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운동을 익히는 것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가소성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을 반복해서 학습했느냐입니다.
불면 환자가 매일 밤 침대에서 걱정하는 경험을 반복하면 ‘침대와 각성’의 연결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적절한 치료와 새로운 경험을 반복하면 그 연결 역시 다시 변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희망입니다.
학습했다면 다시 학습할 수도 있다
몸과 뇌가 특정 반응을 학습했다는 것은 그 반응이 영원히 고정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다른 관계를 학습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성 불면증의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침대와 깨어 있음 사이에 굳어진 관계를 변화시키고, 수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행동을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마음을 편하게 먹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미 학습된 수면-각성 패턴에 새로운 경험을 반복해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증을 이해할 때도 “마음이 약해서 생겼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학습된 신경계와 신체 조절의 문제로 접근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스트레스는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라고 하면 우리는 큰 사건을 떠올립니다.
사업 실패, 가족의 죽음, 이혼, 사고, 질병 같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몸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건의 크기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긴장, 계속되는 수면 부족, 반복적인 인간관계 갈등, 끊임없는 걱정, 회복할 시간 없이 이어지는 업무도 중요합니다.
한 번의 큰 파도보다 작은 파도가 수천 번 반복되면서 해안의 모양을 바꾸는 것과 비슷합니다.
몸과 뇌 역시 반복되는 경험에 적응합니다.
이것이 앞에서 살펴본 알로스타시스와 알로스타틱 로드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이제마의 ‘편급’을 다시 바라보자
여기에서 사상의학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마는 인간의 애노희락과 성정을 중요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애·노·희·락이라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지나치게 치우치고 급해지는 편급(偏急)의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편급을 단지 “화를 세게 낸다.” “슬픔을 크게 느낀다.”처럼 한 번의 감정 강도로만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한 사람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신체적 반응의 방향이라는 관점에서도 연구해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특정 상황을 만날 때마다 비슷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비슷한 방식으로 판단하고, 비슷한 감정이 움직이며, 비슷한 신체반응이 반복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안정된 심신반응 패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가 따라온 질문입니다.
그러나 ‘편급 = 신경가소성’은 아니다
여기에서 다시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제마의 편급과 현대 신경과학의 신경가소성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편급은 사상의학의 성정론과 장부론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개념입니다.
신경가소성은 경험에 따라 신경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현대 신경과학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이제마가 신경가소성을 이미 발견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신중한 비교입니다.
사상의학에서 반복되는 성정의 치우침을 중요하게 보았다면, 현대 과학에서는 반복되는 경험이 신경계와 생리적 조절에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를 연구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연결이 더 적절합니다.
체질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그러면 또 하나의 어려운 문제가 나타납니다.
사상체질은 일반적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적 특성을 전제로 합니다.
반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조건화와 신경가소성은 경험에 의해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체질과 경험은 어떤 관계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살아가면서 체질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현대 생물학에서도 사람은 유전적으로 완성된 결과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과 성장 과정, 가족환경, 음식, 운동, 질병, 스트레스, 사회적 경험 등이 계속 상호작용합니다.
따라서 사상체질을 현대적으로 연구하려면 타고난 경향성과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변화를 구분하면서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체질이라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
이 관점은 중요한 문제를 설명해줍니다.
같은 태음인이라고 해서 모든 태음인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소음인이라고 해서 같은 성격과 같은 질병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체질이 어떤 기본적인 경향성을 의미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위에는 수십 년의 삶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질병을 경험했는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어떤 스트레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는지가 다릅니다.
따라서 실제 환자를 볼 때는 체질 + 삶의 경험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체질을 단순한 네 가지 성격유형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것은 ‘체질 위에 새겨진 삶’일지도 모른다
50대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태어났을 때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50년 동안 살아온 사람입니다.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 위에 수많은 경험이 쌓였습니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질병, 수면, 음식, 운동, 직업, 가족관계, 그리고 반복된 스트레스가 더해졌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현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있는 환자를 단순히 “이 사람은 태음인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타고난 경향성 위에 어떤 삶의 경험이 반복되어 지금의 심신반응을 만들었는가?”
이것이 심신증 치료에서도 중요하다
심신증을 치료한다는 것은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순환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시작점이 되는가? 무엇을 먼저 느끼는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반응을 다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가?
이 고리를 찾으면 치료할 지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면습관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호흡과 이완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신체활동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생각과 해석의 방식을 다룰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의학적 치료나 심리치료를 함께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마음이 문제다.” 또는 “몸이 문제다.”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몸도 기억을 할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몸의 장기가 과거의 사건을 사람처럼 기억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경계는 경험을 통해 학습합니다.
반복되는 경험은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예측은 주의와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자율신경과 신체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체반응이 다시 뇌로 올라가 새로운 느낌을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몸이 기억한다.”고 표현하는 현상의 일부는 학습된 신경계와 반복되는 몸-뇌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런 반복적인 심신반응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성인이 된 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형성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경향성과 어린 시절의 환경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줄까요?
이 질문은 사상체질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체질을 전적으로 선천적인 것으로만 볼 것인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경향성과 삶의 경험이 계속 상호작용하면서 현재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간다고 볼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체질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 유전·환경·후성유전학으로 바라본 사상체질」
유전자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결정하지 않는지, 환경과 스트레스가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체질은 유전된다’ 또는 ‘생활습관이 체질을 바꾼다’는 말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 하나를 계속 붙잡아보려고 합니다.
사상체질에서 말하는 선천적인 경향성과 현대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적 소인은 같은 것일까?
아마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차이를 정확하게 살펴보는 것이 사상의학과 현대 과학을 억지로 맞추지 않으면서도 서로 대화하게 만드는 방법일 것입니다.
※ ‘몸의 기억’은 의학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기억 저장장소가 몸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조건화, 신경가소성, 예측, 자율신경 반응 등 경험과 학습이 이후의 신체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사상의학의 성정 편급을 신경가소성이나 조건화와 동일시할 수는 없으며, 두 이론의 비교는 앞으로 검증해야 할 연구 질문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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