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불면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체질·스트레스·장뇌축·내수용감각을 하나의 사례로 읽다
55세의 남성이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가장 힘든 증상은 불면증입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두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겨우 잠이 들어도 새벽에 두세 번 깹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속이 더부룩합니다. 식욕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가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목과 어깨가 항상 굳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여러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몸이 안 좋습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오늘은 지금까지 공부했던 여러 개념을 이 한 사람에게 적용해보겠습니다. 다만 이 환자는 설명을 위해 만든 가상의 사례입니다.
1년 전에는 잘 자던 사람이었다
이 환자를 현재 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시간을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1년 전만 해도 특별한 수면 문제는 없었습니다.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면 20~30분 안에 잠들었고 아침 6시 반쯤 일어났습니다.
업무량이 많은 날에는 피곤했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긴장했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뒤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항상성과 알로스타시스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몸은 변화하는 환경에 비교적 적절하게 적응하고 다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직장의 갈등이었다
약 8개월 전 회사에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업무상의 작은 의견 차이였습니다. 그런데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이 공개적으로 비판받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침대에 누워 계속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저 말의 논리가 맞는 건가?”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이지?” “다음 회의에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밤 1시가 넘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한 반응이 아닙니다.
중요한 사회적 갈등을 경험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신체적 각성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첫날의 불면은 그 자체로 질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회사에 가자 동료의 표정이 신경 쓰입니다. 메일을 여러 번 다시 읽습니다. 회의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되짚어봅니다. 퇴근 후에도 문제가 끝나지 않습니다. 몸은 집에 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회의실에 있습니다. 저녁을 먹었는데 소화가 잘되지 않습니다.
밤이 되자 또 생각합니다. “오늘은 일찍 자야 하는데.” 그런데 바로 이 생각부터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잠을 자야 한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11시에 침대에 눕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11시 30분. 아직 잠이 오지 않습니다. 다시 봅니다. 12시 10분. “내일도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큰일이네.” 불안이 올라갑니다. 심장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불면을 만들었다
이 시기의 흐름을 간단히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직장 갈등→ 반복적인 생각→ 신체 각성→ 잠들기 어려움
아직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해결되고 충분히 회복한다면 다시 정상적인 수면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몇 주 동안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과정이 시작됩니다.
이제 ‘잠을 못 자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처음에는 직장 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한 달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녁 9시만 되면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잘 수 있을까?” 밤 10시가 되면 몸 상태를 확인합니다. “심장이 조금 빠른 것 같은데.” 침대에 누우면 잠이 오는지 계속 확인합니다.
이제 스트레스의 원인이 회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면 자체가 새로운 스트레스원이 된 것입니다.
직장 스트레스→ 불면→ 불면에 대한 걱정→ 신체 각성→ 더 심한 불면이라는 순환이 생겼습니다.
몸의 작은 신호도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두 달 정도 지나자 그는 자신의 몸을 자주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조금 빨라진 것 같습니다. 배가 더부룩합니다. 목이 뻣뻣합니다. 머리가 무겁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신체감각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도 몸 상태가 안 좋구나.” “이러면 잠을 못 자겠는데.”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앞에서 공부했던 내수용감각이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몸의 신호가 가짜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심박수와 호흡, 근육의 긴장, 위장관 운동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신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몸의 신호에 ‘위험’이라는 의미가 붙는다
어느 날 밤 심장이 빨리 뛰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잠을 계속 못 자서 심장까지 나빠진 것 아닐까?” 심장박동을 확인합니다. 확인할수록 더 크게 느껴집니다. 불안해집니다. 불안해지면서 신체적 각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심장박동은 더욱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순환은 한 단계 더 복잡해집니다. 신체 변화 → 감지 → 위험한 해석 → 불안 → 신체 각성 → 더 강한 신체감각
이전 글에서 살펴봤던 몸-뇌의 피드백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이 불편해졌다
수면 문제가 석 달 정도 계속되면서 식사도 불규칙해졌습니다. 아침에는 입맛이 없습니다. 커피는 늘었습니다. 운동은 줄었습니다. 저녁 늦게 식사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속이 더부룩합니다. 때로는 복통이 생기고 변 상태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잠을 못 자더니 이제 위장까지 망가졌나?” 여기서 장뇌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뇌와 장은 서로 독립된 기관이 아닙니다.
자율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 장신경계 등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양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수면의 변화가 위장관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스트레스가 장내미생물을 망가뜨려 불면증이 생겼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실제 사람의 몸에서는 여러 과정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직장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그다음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러면서 피곤해졌습니다. 운동이 줄었습니다. 커피가 늘었습니다. 식사시간이 불규칙해졌습니다. 장이 불편해졌습니다. 몸의 신호에 더 민감해졌습니다. 불안이 커졌습니다. 다시 잠을 못 잡니다.
몇 달이 지나면 이렇게 질문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불면증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원인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원래의 사건은 사라졌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회사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갈등이 있었던 동료는 다른 부서로 옮겼습니다.
환자는 생각합니다. “이제 잘 자겠지.” 그런데 잠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의 원인은 사라졌는데 그동안 만들어진 반응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면 긴장합니다. 침대에 누우면 각성합니다. 시계를 봅니다. 몸 상태를 확인합니다. 다음 날을 걱정합니다. 이런 반응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조건화와 학습의 문제입니다.
이제 침대는 잠의 장소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침대 = 잠이었습니다. 하지만 수개월 동안 침대 = 걱정 + 노력 + 실패 + 각성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면 침대에 눕는 것 자체가 각성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환자는 말합니다. “소파에서는 졸리는데 침대에만 가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이 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경계가 특정 환경과 특정 반응 사이의 관계를 학습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체질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 오늘 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 환자가 만약 소음인으로 진단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소음인이기 때문에 불면증이 생겼다.”고 말하면 될까요?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하면 지금까지 살펴본 중요한 과정들을 모두 놓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실제 직장 갈등이 있었습니다. 수면 부족이 있었습니다. 생활습관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신체적 각성이 있었습니다. 수면에 대한 걱정이 생겼습니다. 조건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체질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체질은 ‘원인’이 아니라 무엇일까?
여기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김도순 한의사의 체질심리적 관점에서 우리가 계속 사용해온 틀에서는 소음인을 내향적 사고형과 연결해 살펴봤습니다.
이 환자가 실제로 자신의 내부 논리와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반복해서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직장 갈등을 경험했을 때 “저 사람이 왜 나를 싫어하지?”보다 “무엇이 잘못된 거지?” “내 판단에 오류가 있었나?” “논리적으로 어디서 문제가 생겼지?”라는 식으로 반응할 가능성을 하나의 가설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심리적 반응 방향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이지 불면증의 원인을 체질로 확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소음인도 모두 불면증에 걸리지 않는다
이 사실만 생각해도 분명해집니다. 같은 체질이라고 해서 같은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어떤 소음인은 평생 잠을 잘 잡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장 증상이 먼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두통이나 근육통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체질이 의미가 있다면 무슨 병에 걸릴지를 결정하는 운명표라기보다, 환경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대적인 경향성으로 연구하는 편이 더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체질과 병리를 분리해보자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구분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이 환자가 평소에도 어떤 문제를 깊이 분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것은 반드시 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직업에서는 큰 장점이었을 수 있습니다. 꼼꼼합니다. 실수가 적습니다. 문제의 논리적 구조를 잘 파악합니다. 그런데 심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서 같은 특성이 밤에도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가 끝없는 반추와 각성으로 변했습니다.
여기에서 평소의 경향성과 병리적으로 굳어진 반응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분이 바로 체질을 공부할 때 중요합니다.
장점이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절되지 못한 상태’가 문제가 된다
직관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감정기능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감각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사고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애노희락 자체가 병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어떤 반응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필요가 없어진 뒤에도 계속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이제마의 편급(偏急)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편급을 현대의 특정 신경과학 개념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성정의 움직임이 언제 병리적인 치우침으로 넘어가는가?”라는 질문은 현대의 스트레스와 회복 연구와 충분히 대화할 수 있습니다.
정상과 병의 경계는 ‘강도’보다 ‘회복’에 있을 수도 있다
누구나 화를 냅니다. 누구나 걱정합니다. 누구나 슬퍼합니다. 누구나 흥분합니다. 따라서 감정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상황이 끝났을 때 돌아올 수 있는가? 생각을 멈출 수 있는가? 심박수가 안정되는가?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가? 장이 다시 평소 리듬을 찾는가? 밤이 되면 각성이 내려가 잠들 수 있는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회복곡선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 환자의 문제를 한 장면으로 보면 안 된다
진료실에서 이 환자의 HRV를 한 번 측정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수치가 낮게 나왔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젯밤 잠을 얼마나 잤는지, 커피를 마셨는지, 운동했는지, 측정할 때 긴장했는지,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체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의 사진처럼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 환자가 건강했을 때, 스트레스를 처음 받았을 때, 불면이 시작됐을 때, 만성화됐을 때, 그리고 회복할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체질은 사진보다 동영상 속에서 연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치료의 목표도 달라진다
이 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목표는 “소음인을 다른 체질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꾸고 싶은 것은 병리적으로 굳어진 순환입니다. 낮 동안 지속되는 과도한 각성, 침대와 각성의 연결, 수면에 대한 지나친 감시, 신체감각에 대한 위협적 해석, 불규칙한 생활, 줄어든 운동, 불면에 대한 두려움 등을 하나씩 살펴봐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의학적인 원인을 다시 확인하고 적절한 수면치료나 심리치료, 생활조절 등을 함께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적 치료 역시 이러한 전체 과정 속에서 어떤 부분을 목표로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처음에는 잠이 크게 좋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변화가 나타납니다. 밤에 심장이 뛰어도 예전처럼 겁먹지 않습니다. “또 시작됐구나.” 대신 “몸이 아직 각성되어 있구나.”라고 받아들입니다.
시계를 확인하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낮에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커피를 줄입니다. 식사시간이 조금씩 규칙적으로 돌아옵니다. 침대에서 두 시간씩 걱정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어느 날 잠드는 시간이 조금 빨라집니다. 이런 작은 경험이 반복됩니다.
뇌는 ‘아픈 반응’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신경가소성이 있다는 것은 나쁜 반응이 굳어질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반응도 학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침대에 누워도 괜찮았던 경험, 심장이 조금 뛰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경험, 하루 잠을 설쳐도 다음 날을 견딜 수 있었던 경험, 복부 불편감이 생겼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경험이 쌓입니다.
조금씩 새로운 예측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못 잘 거야.”에서 “잠이 늦게 올 수도 있지만 결국 잘 수 있다.”로 바뀌는 것입니다.
몸과 뇌가 새로운 관계를 학습하기 시작합니다.
체질은 남고 병은 좋아질 수 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결론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회복했다고 해서 내향적 사고의 경향성이 사라질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꼼꼼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깊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논리적 기준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밤까지 끝없이 분석하지 않습니다.
즉 기본적인 경향성과 병리적인 반응은 같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체질과 질병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체질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사상의학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태양인다운 모습을 없애는 것이 건강일까요? 소양인의 특성을 줄이는 것이 건강일까요? 태음인이나 소음인을 다른 체질처럼 만드는 것이 치료일까요?
그보다는 각 체질이 가진 경향성이 지나치게 편급해지지 않고 상황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현대적인 언어를 빌리면 다시 유연성과 회복력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필요할 때 반응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내려놓으며, 흔들린 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제 ‘체질’과 ‘병증’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연재에서 우리는 체질 자체에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상의학에는 체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체질 안에서도 건강한 상태가 있고 병적인 상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병이 진행되는 방향과 정도가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무슨 체질입니까?”라는 질문만으로는 임상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이 따라와야 합니다. “그 체질을 가진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체질은 사람을 설명하고, 병증은 현재 상태를 설명한다
조금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체질은 비교적 지속적인 경향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병증은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이 놓여 있는 상태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진료에서는 두 가지가 만납니다.
같은 스트레스라도 누가, 어떤 상태에서, 얼마나 오래 받았으며, 얼마나 회복하지 못했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체질만 알아도 부족하고 증상만 봐도 부족합니다.
사람과 상태를 함께 봐야 합니다.
다음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상의학에서는 같은 체질 안에서 건강한 상태와 병적인 상태를 어떻게 구별했을까요? 그리고 병이 깊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여기에서 이제마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보명지주(保命之主)와 병증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정과 편급을 중심으로 마음에서 몸으로 접근했습니다.
이제 반대 방향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핵심적인 기능은 무엇이며, 그 기능이 흔들릴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가? 그리고 체질마다 건강을 지켜내는 핵심적인 힘을 이제마는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았을까?
다음 글에서는
「체질이 같아도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 보명지주로 다시 읽는 사상체질」
이라는 주제로 이어가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체질을 분류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상의학에서 건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현대의 항상성, 알로스타시스, 회복력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보명지주를 현대의 자율신경이나 면역, 특정 호르몬과 곧바로 동일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마가 왜 체질마다 서로 다른 생명 유지의 핵심을 이야기했는지부터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 이 글의 55세 남성은 개념 설명을 위해 구성한 가상의 사례이며 특정 체질의 실제 임상경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불면증이나 두근거림, 위장관 증상에는 다양한 의학적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지속되거나 새롭게 발생한 증상은 적절한 의학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또한 특정 심리유형이나 사상체질이 특정 질환을 일으킨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연결은 체질적 경향성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병리적 반응을 구분해 연구하기 위한 탐구적 모델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