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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동덕

불면증은 정말 뇌의 문제일까?

읽는 시간 약 9분

“몸은 정말 피곤한데 잠이 안 옵니다.”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

하루 종일 일을 했고 몸은 천근만근입니다. 눈도 피곤합니다. 분명 자고 싶은데 침대에 눕는 순간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낮에는 별것 아니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내일 그 일을 어떻게 하지?’

‘아까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집니다. 시계를 한번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가 또 시계를 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오늘도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

불면증은 이렇게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불면증은 머릿속 생각 때문에 생기는 ‘뇌의 문제’일까요?

오랫동안 환자의 몸을 살펴보다 보면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워집니다.

잠을 못 자는데 왜 배 이야기를 할까?

예를 들어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50대의 한 남성이 몇 달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수면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잠드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립니다.”

그런데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어떻습니까?”

“요즘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많이 찹니다.”

“대변은 어떻습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묽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유난히 배가 불편한 날에는 잠도 더 좋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사례만 가지고 장이 불면증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소화불량과 불면이 우연히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스트레스라는 공통 원인이 두 증상을 동시에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은 해볼 수 있습니다.

배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말 뇌와 아무 관계가 없을까?

장과 뇌는 서로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장을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장과 뇌가 서로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이를 장뇌축(gut-brain axis)이라고 합니다.

장에는 자체적인 신경망인 장신경계가 있고, 미주신경을 비롯한 신경경로를 통해 중추신경계와 연결됩니다. 여기에 면역계와 호르몬,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여러 대사산물까지 관여합니다.

따라서 장과 뇌의 관계를 단순하게

뇌 → 장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는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것은 뇌에서 일어난 변화가 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아주 익숙한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반대 방향은 어떨까요?

장 → 뇌라는 방향도 존재합니다.

장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정보 역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뇌에 전달됩니다.

결국 장과 뇌 사이에는 일방통행 도로가 아니라 양방향 도로가 놓여 있는 셈입니다.

뇌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몸을 읽는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닙니다.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호흡이 어떻게 변하는지, 위와 장이 얼마나 팽창했는지, 몸의 온도와 에너지 상태는 어떠한지 등 몸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정보가 올라옵니다.

이처럼 몸 내부의 상태를 감지하는 과정을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외부 자극이 줄어들면서 자신의 심장박동이나 호흡, 복부 불편감 등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웠는데 심장이 쿵쿵거립니다. 배에 가스가 찬 느낌이 신경 쓰입니다. 몸이 화끈거립니다. 숨을 크게 쉬어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생각합니다.

‘왜 이러지?’

바로 그 순간부터 몸의 감각과 생각이 서로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몸의 작은 변화가 걱정을 만들고, 걱정이 다시 자율신경계의 각성을 높이고, 높아진 각성이 몸의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멀쩡합니다”

불면증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과각성(hyperarousal)입니다.

잠을 자려면 단순히 피곤하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과 뇌의 각성 수준도 함께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불면을 가진 사람에게서 다소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몸은 몹시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습니다.

피로와 각성은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시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피곤했는데 침대에 눕자 생각이 많아지는 사람,

잠들려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깨는 사람,

새벽에 한번 눈을 뜨면 정신이 갑자기 맑아지는 사람.

모두 불면이라고 부르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과정까지 똑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잠은 뇌의 휴식만이 아니라 몸의 조절 과정이다

여기에서 저는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봅니다.

항상성이란 생명체가 살아가기 적절한 범위 안에서 내부 상태를 조절하는 과정입니다.

체온이 올라가면 땀을 흘리고, 혈당이 떨어지면 배고픔을 느끼며,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 몸은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조절합니다.

수면 역시 이런 생명 유지 과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면을 볼 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왜 잠을 못 자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사람의 몸은 왜 아직 깨어 있으려고 하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방향은 상당히 다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주로 수면 자체를 바라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잠들지 못하고 있는 몸 전체의 상태를 바라보게 합니다.

같은 스트레스인데 왜 증상은 다를까?

여기에서 더 흥미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설사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어떤 사람은 목과 어깨가 단단하게 굳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증상보다 먼저 잠이 깨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마다 자율신경계의 반응, 스트레스 조절 체계, 생활습관, 기존 질환, 신체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개인차가 앞으로 이 연재에서 살펴볼 중요한 주제입니다.

불면증을 단순히 ‘잠이 오지 않는 병’이라고만 보지 않고,

장 → 자율신경 → 몸의 내부 감각 → 뇌의 각성 → 수면이라는 연결고리 속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그러면 불면증을 보는 풍경이 조금 달라집니다.

머릿속의 생각만 보던 시선이 가슴으로, 호흡으로, 배로 그리고 몸 전체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불면증의 원인이 장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불면증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뇌만 바라보는 것도, 장만 바라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오가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 글에서는 장과 뇌 사이의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인 미주신경(vagus nerve)을 살펴보겠습니다.

장이 불편할 때 그 정보는 어떻게 뇌에 전달될까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심장과 호흡과 장은 왜 동시에 변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잠들기 위해 필요한 ‘각성에서 이완으로의 전환’에는 자율신경계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불면증 이야기는 이제 머리에서 시작해 몸으로 내려갑니다.

다음 편에서는 다시 몸에서 출발해 뇌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 이 글은 장뇌축과 수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인 건강정보입니다.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불면증을 직접 일으킨다는 인과관계가 확립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속적인 불면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우울·불안, 통증, 약물, 내분비질환 등 다양한 원인과 관련될 수 있으므로 증상이 지속될 경우 적절한 의학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mom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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