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은 분리돼 있을까?
우리는 보통 감정이 ‘머리에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슬픈 일을 생각하면 슬퍼지고, 화나는 일을 떠올리면 화가 납니다. 그러니 뇌에서 먼저 감정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심장이 뛰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조금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어떨까요?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몸부터 움찔합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합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벌써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불안한 사람은 명치가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면 얼굴이 달아오르며, 심하게 긴장하면 배가 아프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불안해서 심장이 뛰는 것일까요? 아니면 뛰고 있는 심장과 긴장한 몸의 상태를 느끼는 것까지 포함해서 ‘불안’이라는 느낌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다마지오가 주목한 것은 ‘몸’이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감정과 의식을 연구하면서 몸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의 관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안 되지만, 핵심적인 생각 하나는 분명합니다.
마음은 몸과 분리된 채 뇌 안에서 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바깥세상의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호흡은 어떤지, 위장과 장은 어떤 상태인지, 체온이나 혈압은 어떤지와 같은 몸 안의 변화도 끊임없이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몸 내부의 상태를 감지하는 과정을 오늘날에는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다마지오의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을 구별해보면 재미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몸과 신경계에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된 상태가 뇌에서 표상되고 경험되면서 우리가 느끼는 느낌과 연결됩니다.
쉽게 말해 감정에는 처음부터 몸이 참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몸 사이에 선을 하나 긋고 “여기까지가 정신이고 여기부터가 신체다”라고 나누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항상성 — 몸은 끊임없이 ‘나’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서 다마지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항상성(homeostasis)입니다.
우리 몸은 체온, 혈당, 수분, 산소, 혈압 같은 생명 조건을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지하려고 합니다. 너무 덥다면 땀을 흘리고,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며, 에너지가 부족하면 배고픔을 느낍니다.
그런데 다마지오는 이 항상성을 단순히 체온이나 혈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계적인 장치로만 보지 않습니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느낌은 그 몸의 상태가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가 됩니다.
배가 몹시 고플 때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몸이 편안할 때 마음도 느긋해지는 경험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감정은 삶에 덧붙여진 장식품이 아닙니다.
몸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생존의 신호체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심신증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불안하고 긴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걱정거리가 계속 돌아다닌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심장과 호흡, 근육, 위장, 수면, 자율신경의 상태가 함께 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상태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몇 년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마음의 문제’라고 부르던 것이 어느 순간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마지오는 현대 신경과학의 언어로 몸과 느낌, 항상성의 관계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100여 년 전 이제마 역시 인간의 성정(性情)과 몸의 장부 기능을 서로 완전히 떨어진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이론이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마가 말한 ‘성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과 같은 것일까요?
그리고 애·노·희·락은 단순히 슬픔·분노·기쁨·즐거움이라는 네 가지 감정을 의미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바로 이 문제부터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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