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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동덕

체질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읽는 시간 약 18분

유전·환경·후성유전학으로 바라본 사상체질

사상체질을 이야기하다 보면 거의 반드시 만나는 질문이 있습니다.

“체질은 타고나는 것입니까?”

전통적인 사상의학의 관점에서는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의 체질적 차이를 선천적인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

그래서 흔히 “체질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현대 생물학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사람은 분명 부모에게 유전자를 물려받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몸과 마음의 모든 특징이 유전자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조차 평생 완전히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상체질에서 말하는 ‘타고난 체질’은 현대 생물학에서는 무엇에 해당할까요? 유전자일까요? 타고난 생리적 특성일까요? 성격적 기질일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이 환경과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경향성일까요?

유전자는 설계도일까?

유전자를 설명할 때 흔히 ‘인체의 설계도’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해하기에는 편리하지만 조금 조심해야 할 비유입니다. 설계도대로 건물을 지으면 어느 정도 정해진 형태의 건물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단백질 생성과 생명현상의 조절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어느 조직에서 얼마나 발현되는지는 매우 복잡한 조절을 받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복잡한 인간 특성은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키, 체중, 대사적 특성은 물론이고 성격이나 여러 질병에 대한 취약성 역시 수많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관여합니다.

따라서 유전자 =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타고난다는 것과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다르다

이 차이는 체질을 생각할 때 특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생리적 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평생 특정 질병에 걸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대한 유전적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식사, 운동, 수면, 감염, 약물, 스트레스, 사회적 환경 등 수많은 요인이 실제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생물학에서 ‘타고난다’는 말은 흔히 특정한 가능성이나 경향성을 가지고 출발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이 관점은 사상체질을 생각할 때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체질이 선천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평생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미리 결정한다는 의미일까요?

이 질문은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씨앗이 같아도 나무는 달라진다

조금 쉬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종류의 씨앗을 두 개 심었습니다. 하나는 햇빛이 충분하고 물과 영양분이 적절한 땅에서 자랍니다. 다른 하나는 햇빛이 부족하고 물도 충분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랍니다. 두 나무는 같은 종류이지만 성장한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유전적 특성이 있고, 태아기의 환경이 있고, 출생 후의 영양과 감염, 가족관계, 교육, 운동, 수면, 직업, 사회적 경험, 질병,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현재의 몸은 이 모든 과정이 쌓인 결과입니다.

따라서 60세의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을 모두 ‘타고난 체질’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후성유전학이 등장한다

최근 건강 분야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입니다.

후성유전학을 아주 간단히 표현하면 DNA의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 발현과 관련된 조절 상태에 영향을 주는 생물학적 기전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대표적으로 DNA 메틸화나 히스톤 변형 같은 기전이 연구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DNA의 글자 자체가 바뀌는 것과 그 DNA가 어떻게 사용되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책으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DNA 염기서열이 책에 쓰여 있는 문장이라면, 후성유전적 조절은 어떤 부분을 더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거나 덜 읽히게 만드는 조절에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생물학은 이 비유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스트레스가 유전자를 바꾼다”는 말은 정확할까?

건강 관련 글을 읽다 보면 이런 표현을 자주 만납니다.

“스트레스가 유전자를 바꾼다.” 정확하게 말하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표현입니다.

일반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해서 DNA 염기서열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환경과 생활 경험이 호르몬과 대사, 면역 및 세포 신호체계를 통해 특정 유전자들의 발현과 관련된 조절 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연구되고 있습니다.

영양, 운동, 수면, 노화, 환경 노출, 스트레스 등이 이러한 생물학적 조절과 관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바꾸면 유전자가 바뀐다.”거나“마음먹기에 따라 체질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고 확대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스트레스가 자녀에게 그대로 유전될까?

후성유전학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주제가 세대 간 영향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가 겪은 트라우마가 DNA에 기록되어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는 식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유전자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임신 환경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출생 후 같은 가정에서 생활합니다. 식습관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사회적 환경도 공유합니다. 부모의 행동과 양육 방식도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자녀에게 비슷한 특성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후성유전적 유전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동물 연구에서 관찰되는 세대 간 후성유전 현상을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경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체질 유전자는 있을까?

이제 사상체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사상체질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네 개의 명확한 생물학적 유형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인 유전자, 소양인 유전자, 태음인 유전자, 소음인 유전자를 찾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의 복잡한 특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체질과 관련된 유전적 차이를 찾으려는 연구들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사상체질을 하나의 특정 유전자만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체형, 대사, 식욕, 온도 감각, 스트레스 반응, 성격적 특성처럼 체질 연구에서 관심을 갖는 현상들은 대부분 수많은 생물학적·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사상체질에 실제 생물학적 기반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체질 유전자’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일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체질과 유전자는 같은 층위의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꾸 태음인 = 특정 유전자, 소음인 = 또 다른 유전자처럼 일대일 대응을 찾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체질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여러 층위가 결합된 상위의 표현형일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고, 그 위에서 신경계가 발달하고, 자율신경과 내분비 및 대사 조절이 이루어지고, 환경과 경험이 더해지고, 그 결과 행동과 신체반응의 일정한 경향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체질 연구의 질문도 달라집니다. “태음인 유전자가 무엇인가?”보다

“태음인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생물학적·심리적 특징의 조합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선천적인 경향성과 후천적인 경험을 구분해보자

여기서 지난 글의 ‘몸의 기억’이 다시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극에 민감한 신경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신의 민감성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지속적으로 위협적인 환경에 노출되었다면 작은 신체 변화나 주변의 신호를 위험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도 있습니다.

즉 타고난 경향성과 학습된 반응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실제 인간 안에서는 계속 상호작용합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선천적이고 어느 것이 후천적인지 완벽하게 분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체질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임상에서 같은 체질이라고 판단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같은 태음인이라 하더라도 체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격도 다릅니다. 직업도 다릅니다. 질병도 다릅니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이것을 단순히 “체질 진단이 틀렸다.”라고만 볼 수도 없고, 반대로 “같은 체질이니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체질이라는 기본적인 경향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위에 평생의 경험과 적응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융의 심리유형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김도순 한의사의 체질심리적 관점을 통해 융의 심리유형과 사상체질을 비교했습니다.

태양인 — 외향적 직관, 소양인 — 외향적 감정, 태음인 — 내향적 감각, 소음인 — 내향적 사고.

여기에서도 사람을 네 개의 고정된 성격상자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융의 관점에서도 사람은 여러 심리기능을 사용합니다.

다만 어떤 방향과 기능을 상대적으로 선호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성장하고 경험하면서 심리적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음인은 평생 이런 성격이다.”처럼 고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체질은 변하지 않아도 ‘체질의 표현’은 변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하나의 중요한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의 기본적인 방향성이 선천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 체질이 평생 똑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의 소음인과 70대의 소음인은 다를 것입니다.

건강할 때와 병이 났을 때도 다릅니다.

충분히 자고 있을 때와 몇 달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도 다릅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과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다릅니다.

그렇다면체질 자체와 현재 나타나는 체질의 표현을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분은 앞으로 상당히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질병은 체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태음인은 고혈압이 잘 생깁니다.” “소음인은 위장이 약합니다.” 같은 표현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설령 어떤 체질에서 특정 질환이나 증상이 통계적으로 더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질병에는 나이, 유전, 체중, 식습관, 운동, 흡연, 음주, 수면, 감염, 약물, 사회경제적 환경 등 수많은 요인이 관여합니다.

체질은 있다면 그중 하나의 경향성 또는 조절 특성으로 연구해야지 모든 질병을 설명하는 단일 원인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체질을 ‘고정된 상자’보다 ‘출발점’으로 본다면

여기까지 오면 체질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 모든 것이 완성된 네 개의 상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각 사람이 서로 조금 다른 출발 조건과 경향성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환경과 경험이 쌓입니다.

먹습니다. 움직입니다. 사랑합니다. 걱정합니다. 병을 앓습니다. 회복합니다. 잠을 잡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다시 적응합니다.

그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면서 현재의 몸과 마음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체질은 운명이 아니라 삶이 펼쳐지는 하나의 조건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치료는 체질을 바꾸는 것일까?

이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만약 체질이 선천적이라면 치료를 통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체질 자체를 다른 체질로 바꾸는 것이 치료의 목적일까요?

사상의학의 논리를 따른다면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 편차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병리적인 상태에서 다시 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오도록 돕는 데 있을 것입니다.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면 여기서 다시 적응과 회복이라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계속 살펴봤던 바로 그 주제입니다.

결국 선천과 후천은 서로 싸우는 개념이 아니다

“유전이냐 환경이냐?”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질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을 이해할 때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유전자는 환경 속에서 발현됩니다. 환경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경험은 신경계를 변화시킵니다. 몸의 변화는 다시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행동은 새로운 환경을 만듭니다.

결국 인간은 유전 → 환경 이라는 단순한 일방향의 결과물이 아니라, 유전 ↔ 발달 ↔ 환경 ↔ 경험 ↔ 행동 ↔ 생리가 평생 상호작용하는 존재입니다.

사상체질을 연구한다면 무엇을 찾아야 할까?

따라서 앞으로 사상체질을 현대적으로 연구하려면 한 가지 지표에서 체질의 정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전자만으로도 부족합니다. HRV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성격검사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체형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장내미생물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오히려 여러 층위의 정보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유전적 특성, 대사적 특성, 자율신경 반응, 수면, 내수용감각, 심리적 정보처리, 스트레스 반응과 회복, 생활습관 등이 서로 어떤 패턴을 만드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체질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현대적으로 검증 가능한 새로운 질문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 이상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우리는 계속 유전자, 환경, 스트레스, 자율신경, 내수용감각, 심리기능, 성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같은 사람도 아침과 밤이 다릅니다. 젊었을 때와 노년이 다릅니다. 건강할 때와 아플 때가 다릅니다. 스트레스를 받기 전과 받은 후가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체질을 정말 연구하려면 한 번 검사해서 얻은 숫자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시간 속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체질은 ‘점’이 아니라 ‘궤적’일 수도 있다

병원에서 혈압을 한 번 측정하면 하나의 숫자가 나옵니다.

하지만 24시간 혈압을 측정하면 전혀 다른 정보가 보입니다.

심박수도 마찬가지입니다. HRV도 마찬가지입니다. 혈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생리적 특징은 한순간의 숫자보다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에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체질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체질이 실제 생물학적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은 한순간의 고정된 특징보다

자극을 받고 → 반응하고 → 적응하고 → 회복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궤적으로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해온 모든 내용을 하나로 모아주는 질문입니다.

다음에는 ‘체질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이제 우리는 중요한 지점까지 왔습니다.

사상체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논하려면 “나는 임상에서 많이 봤다.”는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현대 의학의 한 가지 검사에서 차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체질이 없다고 결론내리는 것도 신중해야 합니다.

먼저 무엇을 체질이라고 정의할 것인지, 어떻게 진단할 것인지, 무엇을 측정할 것인지, 시간에 따른 변화는 어떻게 볼 것인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사상체질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 체질을 ‘점’이 아니라 ‘패턴’으로 연구하는 방법」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이 실제 자연 속에 존재하는 네 개의 뚜렷한 집단인지,

아니면 여러 생리·심리적 특성이 연속적으로 분포하다가 네 가지 유형으로 표현되는 것인지,

체질 진단의 일치도는 왜 중요한지,

유전자·HRV·대사·수면·내수용감각 같은 여러 정보를 어떻게 함께 연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체질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해야 그것을 ‘체질의 증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사상의학과 현대 과학의 대화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후성유전학은 환경과 경험이 유전자 발현과 관련된 조절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전을 연구하는 분야이지, 생각이나 스트레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DNA 염기서열을 바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사상체질의 선천성을 특정 유전자나 후성유전적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재 확립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 제시한 연결은 사상체질의 선천성과 후천적 변화를 현대 생물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위한 탐구적 틀입니다.

mom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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