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 동덕

체질이 같아도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읽는 시간 약 19분

보명지주로 다시 읽는 사상체질

같은 소음인인데 한 사람은 평생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른 소음인은 늘 소화가 불편하고 쉽게 지치며 작은 스트레스에도 잠을 설칩니다.

같은 태음인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체격이 크면서도 활력이 좋고 운동도 잘합니다.다른 사람은 조금만 생활이 흐트러져도 몸이 무겁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체질이 같다면 몸도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사상의학의 중요한 개념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보명지주(保命之主)입니다.

보명지주란 무엇일까?

한자를 하나씩 보면 뜻이 조금 보입니다. 保는 지킨다는 뜻입니다. 命은 생명입니다. 之主는 그것의 주된 바탕 또는 중심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생명을 지켜가는 데 중요한 핵심적인 기능이라는 의미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학에서는 체질마다 이러한 생명 유지의 핵심적인 기능을 서로 다르게 바라봅니다.

태양인에서는 흡취지기(吸聚之氣),

소양인에서는 음청지기(陰淸之氣),

태음인에서는 호산지기(呼散之氣),

소음인에서는 양난지기(陽煖之氣)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체질을 단순히 “나는 무슨 체질인가?”라는 분류의 문제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체질을 가진 사람이 현재 자신의 생명력을 얼마나 잘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상태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체질과 건강상태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이 차이를 먼저 분명하게 해보겠습니다.

소음인이라고 해서 아픈 사람이 아닙니다. 태음인이라고 해서 건강한 사람도 아닙니다.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은 체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현재 얼마나 건강한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 체질을 설명할 때 자주 섞입니다. “소음인은 위장이 약합니다.” “태음인은 살이 찝니다.” “소양인은 열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체질을 곧바로 증상과 연결하면 체질과 병리 상태를 혼동하기 쉽습니다.

사상의학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중요한 것은 체질 이름 자체보다 그 체질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입니다.

자동차의 종류와 현재 엔진 상태는 다르다

쉬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승용차와 트럭은 기본 구조가 다릅니다. 각각 장점도 다르고 사용 목적도 다릅니다. 이것을 체질의 차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같은 종류의 자동차라고 해서 상태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한 자동차는 10년이 되었어도 정비가 잘되어 있습니다. 다른 자동차는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관리가 좋지 않아 여기저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차의 기본적인 구조와 현재의 기능 상태는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체질이 기본적인 생리적 경향성을 의미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재 건강상태는 수면, 음식, 운동, 질병, 노화, 스트레스, 생활환경 등 수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같은 체질이라도 현재 상태는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태양인의 흡취지기

태양인에서는 흡취지기(吸聚之氣)를 중요하게 봅니다.

글자 그대로 보면 안으로 흡수하고 모으는 방향의 기운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현대 생리학의 어느 한 기능과 곧바로 동일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흡취지기는 부교감신경이다.” “흡취지기는 특정 호르몬이다.”라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사상의학 자체의 생리적 언어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태양인의 생리적 편차 속에서 밖으로 발산하는 방향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안으로 받아들이고 모아주는 기능이 생명 유지에 중요하다는 구조로 접근하는 편이 좋습니다.

소양인의 음청지기

소양인에서는 음청지기(陰淸之氣)를 이야기합니다.

이 역시 단순히 “몸을 차갑게 하는 기능”이라고 번역하면 의미가 지나치게 좁아집니다.

사상의학의 전체 생리 구조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소양인의 생리적 편차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도록 하고 생명활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이 많으니 차갑게 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설명으로 보명지주를 이해해서는 부족합니다.

태음인의 호산지기

태음인에서는 호산지기(呼散之氣)를 중요하게 봅니다.

밖으로 내보내고 흩어주는 방향의 기능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태음인의 생리적 특성을 단순히 “잘 먹고 살이 잘 찐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몸 안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생리적 흐름 가운데 밖으로 소통하고 발산하는 기능이 얼마나 원활한가를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다른 관점입니다.

사상의학 임상에서 태음인의 땀과 배출 상태를 중요하게 관찰해온 이유도 이런 전체적인 생리 구조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호산지기 = 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땀은 관찰할 수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이지 보명지주 전체와 동일한 개념은 아닙니다.

소음인의 양난지기

소음인에서는 양난지기(陽煖之氣)를 이야기합니다.

따뜻하게 하는 기능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것 역시 단순히 체온계를 재서 온도가 높고 낮은 문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소음인의 생리적 편차 속에서 소화와 에너지 이용, 신체의 온난한 상태 유지 등과 관련된 전체적인 기능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손발이 차다고 모두 소음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소음인이라고 반드시 손발이 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증상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리적 흐름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하나 보인다

네 체질의 보명지주를 살펴보면 이제마가 건강을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몸 안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움직입니다. 받아들입니다. 내보냅니다. 따뜻하게 합니다. 식힙니다. 모읍니다. 흩어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이 서로 적절한 관계를 이루면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즉 건강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되는 조절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했던 현대 생리학과 흥미로운 대화가 시작됩니다.

다시 항상성으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우리는 항상성(homeostasis)을 공부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체온, 혈당, 혈압, 체액, 산소와 이산화탄소 등 수많은 내부 상태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조절합니다.

그런데 건강하다는 것은 모든 숫자가 항상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운동하면 심박수가 올라가야 합니다. 밥을 먹으면 혈당과 호르몬 반응이 달라집니다. 추운 곳에 나가면 체온을 지키기 위한 반응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끝나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도 살펴봤습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몸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보명지주가 항상성일까?

아주 매력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춰야 합니다. 보명지주 = 항상성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보명지주는 사상의학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체계에서 나온 개념이고, 항상성은 현대 생리학의 실험과 측정을 통해 발전한 개념입니다. 출발점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두 개념이 던지는 질문 사이에는 흥미로운 접점이 있습니다.

“생명체는 무엇을 통해 자신의 안정성을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동일한 답을 제시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 비교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보명지주를 ‘회복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

여기에서 지금까지의 연재와 다시 연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 반응 → 회복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심장이 빨라집니다. 근육이 긴장합니다. 장이 움직입니다. 잠을 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끝나면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사상의학의 보명지주 역시 현대적으로 연구할 때 단순히 어느 기능이 ‘강하다, 약하다’를 측정하기보다 흔들린 뒤 얼마나 잘 회복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연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은 보명지주와 회복력이 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의 연구 질문입니다.

같은 소음인 두 사람을 다시 생각해보자

두 사람 모두 소음인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둘 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긴장합니다. 식욕이 조금 떨어집니다. 밤에 생각이 많아집니다. 여기까지는 비슷합니다.

발표가 끝났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저녁부터 배가 고파집니다. 따뜻하게 식사합니다. 몸이 편안해집니다. 그날 밤 푹 잡니다. 다음 날에는 거의 평소 상태로 돌아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발표가 끝났는데도 식욕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속이 불편합니다. 손발이 차게 느껴집니다. 밤에도 긴장이 계속됩니다. 이틀 뒤에도 잠을 잘 못 잡니다. 일주일 뒤에도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같은 체질이고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회복력에서 차이가 난 것입니다.

사상의학적으로 두 사람의 현재 상태를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체질 진단’ 다음에 반드시 필요한 질문

그래서 임상에서는 “이 사람은 무슨 체질인가?”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그다음 질문이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 체질을 가진 이 사람은 지금 얼마나 건강한가?”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잘 먹는가? 잘 소화하는가? 잘 자는가? 대변과 소변은 어떠한가? 땀은 어떠한가? 추위와 더위에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피로한 뒤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가? 스트레스가 끝난 뒤 몸은 다시 돌아오는가? 같은 질문들이 중요해집니다.

질병 이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활동 전체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임상에서 ‘작은 변화’가 중요한 이유

환자가 말합니다. “통증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물어봅니다.

“잠은 어떻습니까?” “전보다 조금 잘 잡니다.”

“식사는요?” “아침에 배가 조금 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변은 어떻습니까?” “조금 규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요?” “전보다 덜 힘듭니다.”

병의 주된 증상은 아직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몸 전체에서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단순한 부수적 증상이라고 무시해야 할까요?

사상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런 변화가 몸 전체의 회복 방향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사라지는 것과 건강해지는 것은 같은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두통약을 먹고 두통이 없어졌습니다. 잠을 자게 하는 약을 복용하고 잠들었습니다. 지사제를 복용하고 설사가 멎었습니다. 증상이 줄어든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증상이 사라졌다는 것과 몸 전체의 건강상태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항상 같은 문제일까요?

반대로 주된 증상이 아직 조금 남아 있더라도 식욕과 수면, 활동성, 배변, 정서적 안정 등이 먼저 좋아지고 있다면 몸은 회복 방향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질병 하나만 보는 것과 사람 전체를 보는 것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불면증 환자를 다시 보자

지난 글의 55세 남성을 다시 불러오겠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몇 시간 잡니까?”만 물었습니다.

치료 전에는 4시간 잤고 지금은 6시간 잔다면 좋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넓게 보면 다른 변화도 중요합니다.

잠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는가? 밤에 심장박동을 계속 확인하는 행동이 줄었는가? 아침에 식욕이 돌아왔는가? 장이 편안해졌는가? 낮의 피로가 줄었는가? 운동을 다시 시작했는가? 스트레스가 생겨도 이전보다 빨리 안정되는가?

이런 변화까지 함께 본다면 수면시간이라는 한 숫자보다 훨씬 풍부한 회복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상의학과 현대의학이 만날 수 있다

현대의학은 측정에 강합니다. 혈압을 측정합니다. 혈당을 측정합니다. 심전도를 기록합니다. 수면다원검사를 합니다. HRV를 분석합니다. 호르몬을 측정합니다.

사상의학은 사람의 상태를 여러 생리적 현상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려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을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보명지주는 이것이다.”라고 현대 의학 용어 하나를 붙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보명지주가 좋아지고 나빠진다고 판단했던 임상 현상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측정하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다른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 소음인의 양난지기를 연구한다면

양난지기를 단순히 체온으로 측정해서는 부족할 것입니다.

오히려 소음인이라고 진단된 사람들의 말초 체온, 식후 체온 변화, 소화 상태, 에너지 대사, 자율신경 반응, 수면, 추위에 대한 반응, 스트레스 후 회복시간 등을 함께 관찰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상의학적으로 건강한 소음인과 병증이 있는 소음인 사이에 어떤 차이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고전의 개념을 현대의 측정 가능한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태음인의 호산지기도 마찬가지다

태음인의 호산지기를 연구한다고 해서 땀의 양만 측정하면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동에 대한 반응, 체온 조절, 피부혈류, 수분 대사, 대사율, 호흡, 배출과 관련된 여러 생리적 현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시 시간입니다.

운동 전, 운동 중, 운동 후 10분, 30분, 한 시간 뒤를 측정합니다.

그때 건강한 태음인과 병리 상태의 태음인 사이에서 회복곡선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보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우리가 계속 이야기해온 체질을 ‘점’이 아니라 ‘궤적’으로 연구한다는 생각과도 연결됩니다.

보명지주는 하나의 숫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만약 언젠가 보명지주를 현대적으로 연구한다면

혈액검사에서 숫자 하나를 찾아 “당신의 보명지주는 73점입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은 사상의학의 전체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수면, 식욕, 소화, 체온조절, 자율신경, 대사, 활동성, 스트레스 반응, 회복등 여러 기능이 함께 만드는 동적인 패턴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흥미로운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건강의 정의도 달라진다

여기까지 오면 건강을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아무 증상도 없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감기에 걸립니다. 잠을 설칩니다. 화를 냅니다. 배탈이 납니다. 피곤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옵니다.

몸이 흔들릴 수 있지만 회복하는 힘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검사수치가 아직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작은 스트레스 뒤에 며칠씩 회복하지 못한다면 몸의 조절 능력이 이미 떨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공부했던 미병(未病)이라는 문제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병이 생기기 전에도 몸은 달라지고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고혈압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대사질환이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만성 불면도 하루 만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오랜 시간이 있습니다. 예전보다 잠이 얕아집니다. 피로 회복이 느려집니다. 식사 후 더부룩함이 잦아집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뒤 심장이 오래 뜁니다. 운동 후 회복이 늦어집니다. 예전보다 작은 일에도 몸이 쉽게 흔들립니다.

검사에서는 아직 병이라고 할 정도의 이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는 무엇일까요?

질병과 건강 사이에는 넓은 회색지대가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둘로 나눕니다.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습니다.

검사상 질병은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분명히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병원에서는 정상이라고 하는데 몸이 계속 무겁습니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무리하면 며칠씩 힘듭니다.” 이런 환자를 만납니다.

바로 여기에서 다음 주제가 시작됩니다.

질병이 되기 전의 상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보명지주에서 ‘미병’으로

보명지주를 단순히 건강할 때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그 힘이 약해지는 과정을 얼마나 일찍 발견할 수 있는가?입니다.

질병이 완성된 뒤에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복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단계에서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의료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학은 체질에 따라 건강과 질병의 진행을 다르게 관찰해왔습니다. 현대 생리학은 웨어러블 기기와 연속적인 생체신호 측정을 통해 심박수, HRV, 수면, 활동량, 혈당 등의 시간적 변화를 점점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세계 사이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병이 생기기 전에 몸의 ‘회복곡선’부터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검사는 정상인데 왜 나는 아플까? — 미병과 ‘회복력의 저하’라는 새로운 관점」

이라는 주제로 이어가겠습니다.

질병과 건강 사이의 회색지대인 미병을 먼저 살펴보고,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위험인자와 전임상 상태가 미병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HRV·수면·활동량 같은 연속적인 생체정보에서 질병 이전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상체질의 보명지주를 ‘질병 발생 여부’가 아니라 회복능력이 약해지는 과정과 연결해 연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사람은 병이 생긴 날부터 아픈 것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잘 돌아오지 못하는 몸’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 질문이 앞으로 우리가 사상체질과 예방의학을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보명지주는 사상의학 고유의 이론적 개념입니다. 이를 항상성, 자율신경계, 면역기능, 대사 또는 현대 의학의 회복력과 직접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태양인의 흡취지기, 소양인의 음청지기, 태음인의 호산지기, 소음인의 양난지기를 특정 현대 생리학적 지표 하나로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립된 것도 아닙니다. 이 글에서 현대 생리학과 비교한 부분은 보명지주를 검증 가능한 연구 질문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탐구적 관점입니다.

momone
함께 보면 좋은 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