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노희락은 네 가지 정보처리와 신체반응의 방향일까?
이제마·융·김도순·다마지오를 한자리에서 바라보다
지금까지 꽤 먼 길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불면증 이야기였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왜 뇌는 잠들지 못할까?”
그 질문에서 장뇌축을 만났고, 자율신경계와 내수용감각으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 다마지오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마음의 상태를 몸과 완전히 분리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다음에는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왜 사람마다 몸의 반응이 다를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서 융의 심리유형론을 만났고, 김도순 한의사가 융의 심리학과 사상체질을 접목해 바라본 체질심리의 문제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제마의 애노희락과 성정(性情)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애노희락은 정말 슬픔·분노·기쁨·즐거움이라는 네 감정일까요?
아니면 그 안에는 사람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몸으로 반응하는 서로 다른 방향성까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질문을 제대로 다루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제마와 융, 김도순과 다마지오를 한꺼번에 섞지 않는 것입니다.
네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고 서로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제마는 19세기 조선의 의학과 철학 속에서 인간의 성정과 장부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융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심리적 차이를 탐구했습니다.
김도순 한의사는 사상체질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하면서 융의 심리유형론과 사상의학을 연결해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다마지오는 현대 신경과학을 바탕으로 몸의 항상성, 감정, 느낌과 의식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따라서 이제마 = 융 = 다마지오라는 식으로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네 이론을 서로 다른 층에 놓아야 합니다.
이제마의 인간관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는 몸과 마음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상의학에서는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의 장부 기능 차이와 성정의 차이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설명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애노희락이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태양인은 애성·노정, 소양인은 노성·애정, 태음인은 희성·락정, 소음인은 락성·희정이라는 구조를 가집니다.
여기서 애노희락은 단순히 하루 동안 얼마나 슬퍼하고 화내고 웃는지를 측정하는 감정표가 아닙니다.
특히 사상의학에서는 애노희락의 기운이 움직이는 방향과 장부의 생리적 관계까지 함께 설명됩니다.
따라서 애노희락에는 적어도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기분’보다 훨씬 넓은 인간의 작용이 들어 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융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은 같은 세상을 왜 서로 다르게 보는가?
그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기능을 감각, 직관, 사고, 감정으로 구분했습니다. 감각과 직관은 주로 인식기능입니다. 감각은 현재 존재하는 실제적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직관은 그 안에 숨어 있는 가능성과 관계를 포착합니다. 사고와 감정은 판단기능입니다. 사고는 논리적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감정은 가치의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여기에 다시 외향과 내향이라는 방향이 결합됩니다.
중요한 것은 융 역시 단순한 행동을 분류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말이 많으냐 적으냐보다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도순 한의사의 체질심리 연구가 중요해집니다.
사상체질을 얼굴, 체형, 말투, 몇 가지 성격 특징만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깊은 곳을 보려면 행동을 만들어내는 심리적 방향을 살펴야 합니다.
융의 심리유형과 사상체질을 연결하는 이러한 체질심리적 관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양인 — 외향적 직관
소양인 — 외향적 감정
태음인 — 내향적 감각
소음인 — 내향적 사고
이것을 단순한 성격표로 읽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네 사람에게 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당신은 무엇을 먼저 보았습니까?”라고 묻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환자는 말합니다. “3개월 전부터 잠을 잘 못 잡니다.”
네 가지 심리적 방향을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적용해보겠습니다.
직관적 방향에서는 먼저 패턴과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3개월 전에 무엇이 달라졌을까?”
“수면 문제와 다른 증상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적 방향에서는 사람과 관계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3개월 전에 가족이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환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각적 방향에서는 실제 경험을 구체적으로 확인합니다.
“몇 시에 잠들고 몇 시에 깨는가?”
“두근거림이나 복부 불편감은 없는가?”
사고적 방향에서는 원인과 구조를 분석합니다.
“수면무호흡이나 약물, 카페인, 우울·불안, 다른 질환 가능성은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어느 하나만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좋은 진료에는 네 방향이 모두 필요합니다.
다만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먼저 향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가설을 하나 세워볼 수 있습니다.
애(哀)를 슬픔, 노(怒)를 분노, 희(喜)를 기쁨, 락(樂)을 즐거움이라는 감정 이름에만 가두지 않고, 인간이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향을 표현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노(怒)’를 단순히 화를 내는 행동이라고 보면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 어떤 체질인가?”라는 질문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를 하나의 방향성 있는 작용으로 본다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밖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는가?”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가?” 질문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여기에서 ‘정보처리’라는 현대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제마가 직접 사용한 개념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제마가 애노희락을 네 가지 정보처리 방식이라고 말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틀린 표현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애노희락과 성정의 구조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정보 인식·평가·행동 방향이라는 틀로 다시 질문해볼 수 있다.
이것은 이제마의 원문 자체가 아니라 현대적 해석을 위한 가설입니다.
이 차이를 분명히 해야 사상의학을 현대 과학과 비교하는 작업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 정말 머릿속에서만 일어날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다마지오가 다시 등장합니다.
중요한 회의를 앞둔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회의실 문 앞에 서는 순간 심장이 빨라집니다. 손에 땀이 납니다. 배가 움직입니다. 호흡이 얕아집니다. 그 몸의 변화가 다시 뇌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말합니다. “긴장된다.” 그렇다면 ‘긴장’이라는 마음이 먼저였을까요?
아니면 몸의 변화가 먼저였을까요?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게 선후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외부 상황을 평가하는 뇌와 몸의 생리적 변화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합니다.
다마지오의 관점에서 중요한 개념이 항상성(homeostasis)입니다.
우리 몸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 상태를 조절합니다.
체온, 혈압, 혈당, 수분, 호흡, 심장박동, 장운동 등 수많은 변수가 일정 범위에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뇌는 몸의 내부 상태에 관한 정보를 계속 받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정보처리는 눈과 귀로 들어오는 외부 정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장과 장, 호흡, 근육 등에서 올라오는 내부 정보도 함께 처리됩니다.
즉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기 몸도 끊임없이 읽고 있는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애노희락을 현대적으로 탐구할 때 단순한 ‘정보처리 유형’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 의미를 부여하고 → 행동하고 → 몸이 반응하며 → 그 몸의 상태를 다시 느끼는 하나의 순환입니다.
이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외부 정보
↓
주의와 인식
↓
판단과 가치평가
↓
행동·정서 반응
↓
자율신경·내분비·신체 변화
↓
내수용감각
↓
느낌
↓
다시 판단이라는 순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이제마가 제시한 생리학적 모형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대의 몸-뇌 연구를 이용해 사상의학에 새로운 연구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체질은 이 과정 중 어디에 있을까요?
직관형, 감정형 같은 심리기능에만 있을까요?
아니면 장부 기능의 차이에만 있을까요?
체형에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체질이 어느 한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체 순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방향성’이라면 어떨까?
외부 세계에서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며, 어떤 상황에서 몸이 쉽게 긴장하고, 그 몸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그 느낌을 다시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 모든 과정에서 개인마다 비교적 반복되는 패턴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하나의 심신 반응 패턴으로 연구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사상체질의 과학적 증명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아직은 연구해야 할 가설입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같은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계속 생각합니다.“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까?” 가능한 시나리오가 계속 떠오릅니다. 밤에도 머리가 멈추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보다 사람의 반응에 더 민감합니다. “상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동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생각이 반복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몸에서 먼저 불편함을 느낍니다. 배가 더부룩하고 목과 어깨가 굳습니다. 그 신체감각에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마지막 사람은 사건을 머릿속에서 계속 분석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잘못 판단했지?” “앞뒤가 맞지 않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지?”
그리고 네 사람 모두 잠을 못 잘 수도 있습니다.
증상명은 똑같이 불면증입니다.
그러나 그 불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차이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반복된다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늘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 문제가 가장 먼저 마음을 흔듭니다.
어떤 사람은 몸의 불편함과 현실적 경험에 민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분석하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심리적 과정에 특정한 신체반응이 반복해서 동반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하나의 심신 반응 경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상체질을 단순한 체형 분류나 성격검사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 가설이 흥미롭다고 해서 곧바로 태양인은 이런 뇌를 가지고 있고, 소양인은 이런 자율신경 반응을 보이며, 태음인은 이런 장내미생물을 가지고 있고, 소음인은 이런 내수용감각을 가진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과학적 근거로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은 반대입니다.
체질을 먼저 정해놓고 현대 과학의 개념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인지·정서·자율신경·내수용감각 패턴이 존재하는지를 측정하고, 그 패턴이 사상체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검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상의학과 현대 과학의 대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무슨 체질일까?”라는 질문을 조금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보는가?
가능성인가? 사람과 관계인가? 실제 경험과 감각인가? 논리와 원리인가?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떤 방향으로 생각이 반복되는가?
그 순간 내 몸에서는 무엇이 먼저 달라지는가?
심장이 뛰는가? 배가 아픈가? 어깨가 굳는가? 호흡이 얕아지는가? 잠이 달아나는가?
그리고 나는 그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바로 이 질문들이 마음과 몸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처음에는 불면을 뇌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다음 장뇌축과 자율신경계를 보았습니다.
내수용감각을 통해 몸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살펴봤습니다.
다마지오를 통해 항상성과 느낌을 공부했습니다.
융을 통해 사람마다 정보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김도순의 체질심리적 관점을 통해 이것을 사상체질과 비교해봤습니다.
그리고 이제마의 성정론을 통해 마음의 방향과 몸의 문제가 하나의 체계 안에서 논의되어 왔다는 것도 살펴봤습니다.
이제 처음의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몸은 정말 피곤한데 왜 잠이 안 올까요?”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을 네 가지 체질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겠습니다.
다만 ‘태양인은 몇 시에 자야 한다.’ ‘소음인은 이 음식을 먹으면 잠이 온다.’같은 단순한 체질별 수면법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같은 불면증인데 왜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다를까? — 사상체질로 바라본 네 가지 심신반응」
태양인의 외향적 직관, 소양인의 외향적 감정, 태음인의 내향적 감각, 소음인의 내향적 사고라는 심리적 방향을 하나의 가설적 틀로 놓고, 각 유형에서 스트레스가 어떻게 생각과 몸의 각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율신경계와 내수용감각이라는 현대 생리학적 관점에서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아직 모르는가도 분명히 구분해보겠습니다.
어쩌면 그 작업을 통해 불면증을 보는 질문도 바뀔 수 있습니다.
“왜 이 사람은 잠을 못 자는가?”에서
“이 사람의 몸과 마음은 어떤 길을 따라 깨어 있는 상태에 도달했는가?”로 말입니다.
※ 이 글에서 애노희락을 ‘정보처리와 신체반응의 방향’으로 살펴본 것은 《동의수세보원》의 문구를 그대로 현대 신경과학 용어로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마의 성정론, 융의 심리유형론, 김도순 한의사의 체질심리적 접근, 다마지오를 비롯한 현대 몸-뇌 연구를 서로 구분한 상태에서 비교해보기 위한 가설적 관점입니다. 현재 현대 신경과학이 사상체질별 고유한 자율신경·내수용감각 패턴을 확립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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